그때의 작은 꿈은 어디쯤 와 있을까.
이 종 옥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맑고 드높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나와 놀기가 미안하였는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50년의 삶이 깃든 서울 터전을 떠나와
이곳 예산에 정 붙여 살겠다고 저녁노을을 친구삼아 산책을 나섰다.
거미도 산책길에 있었다.
길가 작은 나뭇가지에서 얽히고설킨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떨어지고 다시 오르며 또 오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자리 잡고 쉬는가 하더니,
지주망에 걸려 살겠다고 팔딱거리는 날벌레를 냉큼 잡아먹는다.
외로워 산책 나온 친구인가 하였더니 길목을 지키고 먹이사냥을 나왔나 보다.
저녁노을 빛이 무색해 한다.
거미는 산책보다 먹고 사는 일이 더 시급하였나보다.
‘고단한 삶은 너나 나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구나!’
이곳에서 고향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때때로 그리움이 찾아 올 때, 나를 키워 준 고향 병천(아우내)으로 간다.
고향에 가면 친구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에 내 웃음도 한데 어우러져 놀던 추억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초가집들이 정겹게 모여 살던 고향산천, “진지 잡수셨슈~” 가난한 삶, 배고픔의 안부를 물으며 살았다.
지금은 그 초가집들이 오간데 없다.
넓은 마당에서 자치기 치며 뛰어 놀던 자리도 왜소한 마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한 곳인데도 고향 땅을 밟게 되면 공허하던 가슴이 따뜻해진다.
놀이터라고 해야 독립의 염원이 서린 유관순열사의 비석, 양지바른 잔디와 자갈이 깔린 언덕이다.
돌층계 사이, 이끼 낀 소나무언덕에 올라서면 묵념을 한다.
무궁화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언덕,
비석을 사이에 두고 앉아서 친구들과 미래의 꿈과 희망을 나누며
하루해를 보내기도 한 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유관순 열사의 피맺힌 음성이 매봉산에서부터 횃불 들고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던, 정기어린 정서 속에서 자랐다.
독립운동의 횃불은 아니었어도 고향에서 품었던 그때의 작은 꿈은 어디쯤 와 있을까.
젊어서는 세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겠다고 다짐을 하며 살았다.
사랑이 있었기에 그 힘든 삶을 마다하지 않고 지켜냈다.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움으로 슬퍼하는 것도 사치였던 시절이다.
그렇게 삼남매를 키워 놓고 보니,
세월의 서리가 내려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
육신은 진이 빠져, 관절의 뼈마디는 비가 올 것이라고 일기예보도 해 준다.
엉겅퀴 같은 손등과 발, 거기에 기억력은 어디에 놓고 왔는지,
휴대폰을 손에 쥐고 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길 한 두 번이 아니다.
창피하여 내색도 못하고 자괴감에 빠져 지나온 세월의 나를 반추해 본다.
마음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몸은 전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큰아들에게
“세월이 무상하구나!”
라고 말했더니 아들의 반응은
“세월은 무상하지 않은데, 거기 잠시 머무는 사람만 무상하죠.”
한다. 과연 그럴까?
가을철 뙤약볕에 땀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훔치며,
논두렁 누런 벼 폭 사이에 숨어 있는 메뚜기를 홀쳐서 잡아 병속에 넣는다.
작은 구멍으로 집어넣은 메뚜기들은 좁은 병속에 갇혀서 펄펄뛰며 싸운다.
“누가 더 많이 잡았니?”
병속의 메뚜기들이 싸우거나 말거나 견주어 본다.
메뚜기 잡기에 여념이 없던 친구들,
장래 희망을 현모양처라고 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떤 놀이터에서 어떤 메뚜기를 잡고 어떤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까.
그때 우리가 품었던 작은 꿈들이 기억에서 잊혀 진 것 같았지만,
그 꿈이 자라 오늘의 우리를 지켜 낸 것이다.
구렛들 강가에 널브러져 있는 메마른 돌처럼 산산이 부서진 것 같은 희망사항,
종교가가 되겠다던 꿈은 또 다른 나로 키워왔다.
창소리 유수지 늪에는 지난여름 피었던 연꽃 한 두 송이 아직 고개를 다소곳하니 들고 있다.
마지막 잔치를 치루고 가려는 듯.
꽃창포, 붓꽃, 부들이도 내년에 꽃의 향연에 빠지지 않고 다시 피어날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시 피었다 지고, 또 다시 피어 날 수는 없는 것일까.
외로워 나왔던 산책길,
유관순 열사의 비석에 앉아서 나누던 작은 꿈과 미래의 희망이 기억에 묻혀 진 것 같았지만,
그 꿈에 생각을 더하고, 갈고 닦아서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먼 길을 돌고 돌아 이곳에서 석양빛을 바라보며,
작은 꿈은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생각해 본다.
풍요의 계절 이 가을에 내가 거둬들일 수확의 열매는 매우 가볍기만 한 것 같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가꾼 노력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달이라도 두둥실 떠있는 날은 고향의 밤하늘이 더욱 그리워진다.
2017년 9월 - 2019년 10월 정리 ,수필문학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