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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해설
시원始原에 잠기고픈 이승의 그림자
-심지향 제4시집『시들어도 눕지 않는 억새처럼』에서
이 만 재 (시인, 문학평론가)
인간이 얼마만큼 자유自由로우며, 인간이 향유하는 자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인간이 무슨 자격으로 다른 인간을 강제하거나 속박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은 동서고금을 통해 선각자先覺者들이 빈번하게 제기하고 격렬하게 논란해왔다. 오늘날 자유라는 문제의 지성적, 사회적, 개인적인 의미에서 그 무엇보다 소중한 인간기본권과 밀접한 관심을 갖기에 자주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이미 결정된 과정 이상의 존재存在임이 틀림없다. 그러므로 인간은 모든 것을 사유하고 적절하게 행동하는 유일唯一의 실존實存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구나 독자적인 자유를 선택할 수 있을까? 여기서 생각의 벽에 부딪힌다. 인간의 자유와 속박의 양극에서 스스로 중간 위치를 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그것이다. 운명론運命論 또는 예정설豫定說이 그렇다.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운명론에 대한 태도 및 인간 자유의 한계를 강조한 것이 유일한 현실적인 태도로 여겼다. 운명론을 가짐으로써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서 자신의 한계와 상대적인 무력감, 그리고 무의미를 떠넘겨 받은 셈이다. 어쩌면 태생적 패배자임을 자처自處해왔다. 대개 이러한 관념은 종교宗敎에서 비롯된다. 그 관념은 인간인 자신의 왜소함을 거대한 신神과 비교해, 자신은 언젠가 죽어야 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스스로 결론을 짓고 나머지 문제는 신만이 아는 불가해不可解한 신비神秘로 받아들여만 했다. 이것이 최선이다 .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지, 결코 인간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므로….
그러나 신은 온전한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인정함으로써 그의 권능을 인간에게 분배한다. 인간의 의지意志는 자유롭다. 도덕道德적 자유는 선택된 신념에 순응하여 행위 하는 자유. 신의 선물인 자유의지는 도덕적 자유를 포괄한다. 인간은 자유의 구조 안에 실존한다. 그러므로 문인은, 특히 시인詩人은 그 누구보다 감성感性의 주체로서, 자신만의 정신세계를 갖는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이어야 할 것이다.
①사십년 세월을 되돌아가서/득일랑 순일랑 놀~자 소리치면/화들짝 뛰어들 것만 같은 싸리문/뜬금없는 억측에 설레는 가슴//내 어머니 같은 노파가/호미로 밭이랑 일구는 굽은 등 너머/옷깃 헤집는 삽상颯爽한 바람 따라/춘정에 들뜬 산비둘기 소리에/취한 듯 나른한 정취情趣
-시「봄은 가슴으로」의 일부.
②외로운 하루를 산 시간은/소리 없이 사라질까/뒤뚱거리는 저 어둠 속으로/러시아 배불뚝이 목각인형처럼//무지개 곱던 꿈도/속절없이 흐르는 시간들도/그 무엇 하나 결코 채워지지 않고/그냥 과거로 흘러 보내고
-시「미필적고의未必的故意」의 일부.
③서러운 갈잎 먹고 자란 누에/질 좋은 비단실 뽑아내는 아픔/아빠 없는 빈자리는/언제나 외로운 배고픔이어서/뚝뚝 돋는 초록눈물이/강물처럼 출렁이던 유년의 뜨락//진심으로 뉘우치던 눈물의 고백/여리고 여린 루시아는 어디로 갔을까/거울 속 골 깊은 주름살/표정 없는 낯선 얼굴이/흘러간 유년을 현상 수배한다.
-시「유년을 현상 수배하다」의 일부.
안태본安胎本 그리고 향수鄕愁, 무한無限한 자연과 유한有限한 인생을 대조시켜 유린된 추억을 못내 그리워하며 인생의 무상無常함을 심금心琴으로 읊는다. 인용한 작품들의 주제는 향수이다. 고향에 대한 밝고 맑은 감촉보단 춥고 서러운 아픔이 깊게 배인 회상, 마치 깊게 패인 상처를 건드리는 듯 한 고통의 되풀이, 그 지평선을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시①에서 화자는 시골의 춘경春景, 등 굽은 노파가 산비둘기 우는 밭에 나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40여 년이 지난 고향의 풍경을 회상한다. 어린 뱃가죽마저 태울 듯 한 춘궁春窮, 보릿고개의 고향, 눈에 어지럼 같이 아지랑이 아롱거리던 그곳. 화자에겐 고향은 언제나 가난과 아픔, 외로움의 대명사이다. 하지만 그곳은 인간적인 훈기薰氣가 흘렀고 서로에게 배려하는 고마움이 가슴에 지워지지 않음을 잊지 않게 한다. 시②는 빗나간 인생을 탄식한다. 꿈을 갖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시위를 당겼으나 화살은 과녁을 맞히지 못한 채, 허송세월에 스쳐간 인생무상人生無常함을 자탄한다. 이런 까닭에 이 시의 제목, ‘미필적고의’는 법률용어이다. 이는 범죄사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인식하고 또 이를 인용認容하는 것을 뜻한다. ‘어쩌면 하는 고의’, 예컨대 엽총으로 조류를 사냥하는 경우, 자칫하면 주변의 사람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발포하였는데 역시 사람이 맞아 사상死傷했을 경우이다. 시③은 늙은 편모슬하에서, 막내딸로 태어나…언제나 외론 배고픔…의 서러운 유년의 고향, 세월이 흐른 거울 속의 얼굴…깊은 주름살 표정 없는 얼굴…을 보면서,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 시절로 회귀回歸하고픈 심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①허위단심, 달려오신 어머니/먼 길 삼십 리 부르튼 발 살필 새 없이/나를 업고 달래주시던 따오기 자장가에/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잠들던// 어머니는 날개옷 입고 하늘나라 가셨으나/아직도 나는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따오기 노래 가락에 눈물지으며/어머니 기다리는 여섯 살 어린 마음.
-시「어머니의 따오기」의 일부.
②끝없이 포근하고 언제나 풍요한/내게 끊이지 않는 평화였던/가르마 반듯한 어머니//어머니 옷자락인양/내려오는 달빛을 부여잡고/날개도 없는 나는 한달음에/따뜻하고 평화로운 나라로 올라가/어머니 마른 젖가슴에/예전처럼 얼굴을 묻고서/떼쓰던 어리광 철부지 막내딸/그 시절로 돌아가고.
-시「한가위 달빛 부여잡고」의 일부.
③못다 나눈 정은 늘 아쉬워/가끔 인생이 버거운 날엔/홀로 무릉계곡에 들어//어머니 치마폭 같은 폭포자락에/겹겹이 쌓인 정한情恨 모두 풀어/나는 한 마리 산천어가 되고.
-시「무릉계곡에 들어」의 일부.
인용한 작품들은 끝없이 지고지순한 사랑과 정성이 깃든 모성애에 대한 그리움과 홀어머니의 노역老役의 소외감, 그리고 그 허허로운 공백, 궁핍에서 오는 서러움이 뒤범벅된 아픈 회상을 노래한다. 『명심보감明心寶鑑』,「효행편孝行篇」첫머리에…‘부혜생아(父兮生我 : 아버지 나를 낳으시고) 모혜국아(母兮鞠我 : 어머니 나를 기르셨네), 애애부모(哀哀父母 : 애달프다) 생아구로(生我劬勞 : 부모님께서 나를 낳아 키우느라 고생하셨네) 욕보지덕(欲報之德 : 그 은덕 갚으려 하나) 호천망극(昊天罔極 : 하늘처럼 넓고 크고 끝없어라)’ 고 한다. 미물에 불과한 까마귀도 기력이 쇠진한 늙은 어미 새에게 먹이를 갖다가 물려준다고 해서, ‘오유반포지효烏有反哺之孝’라고 하지 않는가. 세태가 황폐한 현대는 이 말마저 낡고 무색해져 버린 것인가. 인용한 세 편의 시는 주제가 어머니이다. 어떤 이는…‘천평칭天平秤의 한쪽에는 세계를, 다른 쪽에는 나의 어머니를 실어놓는다면, 세계 쪽이 훨씬 가벼울 것이다.’…라고 했으며, 근대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선善의 씨를 내 가슴에 심어준 분은 어머니였고, 자연의 신비에 내 마음을 열어준 것도 어머니였다. 그리고 관념세계의 눈을 뜨게 해주고 넓혀준 것도 어머니였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어머니는 거룩하면서 위대한 희생의 본보기인 셈이다. 의문이망倚門而望, 아마 심지향 시인의 모친은 지금도 멀리 있는 딸을 고향의 문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고 계실지….
①허무한 권력에 눈이 먼 위정자들/도덕 불감증에 흥청대는 기업인들/바다 없는 어부가 있는가/상도商道 모르는 장사꾼/正道를 벗어나서/지름길이면 다 통하는가//마른하늘에 천둥번개 치듯/07년 12월 7일 오전 07시
-시「아! 거룩한 대한민국」의 일부.
②큰짐승들 커다란 탈법 위법 무법이 춤추는 세파/잔챙이 양심대로 바른 줄인 양 서서도/종내 줄밖으로 내몰리는 외톨이/바람막이 하나 없는 노점상//무람없는 단속반 뜬금없는 발길질/…(중략)…/ 허울 좋은 경세제민經世濟民 허줄한 열외인생
-시「열외列外 인생」의 일부.
③함부로 밟히고 멍들어도/보도블록 틈 사이 고개 들고 웃는/노란 민들레 꽃방석 외면하고/구겨진 구인란에/날개 접고 앉은 흰나비야/춤추는 유가파동으로/비정규직 퇴출로/아니면 화물차 운송기사들처럼/너도 오늘 실직했니?
-시「오월, 그리고 흰나비」의 일부.
이치理致나 도리道理에 맞지 않은 것을 가리켜 ‘부조리不條理’라고 한다. 이 말은 프랑스 작가 카뮈가 처음 사용했으며, 그의 작품 「이방인異邦人」은 부조리의 한 전형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처음에는 부조리는 조리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논리적 의미만을 표시하는 말이었으나 차츰 반反합리주의적인 철학이나 문학 특히 실존주의 철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어가 되었다. 인간은 단세포적인 유기체有機體가 아니라 더욱 복잡한 유기체이다. 인간의 특수한 성질은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포함하여 의식적인 목적을 가지고 가름하며, 자각하고 예측하며 문화를 창조하고 의미를 추구한다.
현실참여(參與, commitment)[앙가주망]란, 자기 작품을 통하여 어떤 특정적 믿음과 강령들, 특히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理念]적이며 사회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대한 개혁을 돕는 것들의 옹호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고 작품의 효과를 계산하기 위하여 작가는 그 작품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그의 서사시적 연극에서 낯익은 실재의 양상樣相들을 낯설게 만들어서, 독자가 희곡의 인물들과 주제에 정서적으로 말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이른바 이화효과(異化效果, alienation effect)를 사용했다. 그의 목적은 관중에게 비판적 태도가 생기게 하고 무대에서 재현되는 사회적 현실을 단순히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에 반항하도록 자극하는 데 있었다.
인용한 시들도 그런 맥락에서 창작의 의도를 지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①은 가진 자들의 도덕 불감증에서 빚어진 태안 기름유출사건을, 시②는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기업에 유연한 권력을 유독 극빈자인 노점상에 대한 강압적 정책운용을 꼬집고, 시③비정규직을 포함한 퇴출에 대한 우려를 잘 드러내고 있다.
①황혼을 털어내며/눈썹달 옷자락에 묻어나온/저 별님 속에/샘물처럼 맑은 사람 하나/집짓고 산다면 좋겠다/…(중략)…/바라만 봐도 좋을/그런 한 사람 살고 있으면/잡다한 사바 번뇌 홀홀 벗어놓고/상큼한 그 집 추녀 끝에/한 마리 작은 새되어/깃들이고 살면 참 좋겠다.
-시「개밥바라기」의 일부.
②유장한 세월 녹아들어/들끓는 용광로처럼 타는 강물/우리도 물같이 흘러갈 여로旅路에/삿대이고 버팀목인/하나뿐인 내 운명//그대 앞에선 언제나/빛나는 꽃이고 싶은/내 인생 마지막 운명/당신은 세상에서/하나뿐인 내 편
-시「내 편」의 일부.
③때론 천둥번개 거센 파도 몰아치고/쓰나미 해일 휩싸여도/요지부동 할 수 없는/좌절의 사슬에 얽매어도//천년 뿌리내린 고목으로/파도에 묻혀도 가라앉지 않는/섬만큼 작은 내꺼 하늘을 가졌기에/나는 참으로 다복多福한 사람
-시「고도孤島에 앉아」의 일부.
사랑, 우리말 그것은 ‘헤아려 생각한다’라는 뜻의 ‘사량思量’이 변한 말이다. 상대방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느냐의 깊이와 무게가 곧 사랑이다. 영어의 ‘love'는 ’기뻐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lubere'에서 유래하였는데, 이것은 동서양의 사랑에 대한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고 있다. 인仁과 자비慈悲는 동양의 대표적인 사랑 정신이다. ‘효도는 인의 근본’이라는 공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인은 부모형제라는 혈연에 뿌리를 둔 사랑에서 생겨나는 것이며 이런 감정을 아무런 인연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넓혀가는 것을 뜻한다. 맹자는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사랑이 생긴다고 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慈’는 진정한 우정이며, ‘비悲’는 연민과 상냥함을 뜻한다. 이처럼 동양에서 사랑은 타인을 자신처럼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love’는 그리스인의 가치관에서 출발한다. 그리스어로 사랑은 에로스(eros), 아가페(agape), 필리아(philia)라는 3개의 단어로 표현된다. 이들은 사랑의 본질적인 세 가지 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에로스는 정애에 뿌리를 둔 정열적인 자기만족적 사랑이며, 아가페는 자기 희생함으로써 실현되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며, 필리아는 독립된 이성간에 성립되는 우애를 뜻한다. 목적과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기쁜 마음의 상태’를 가리켜 사랑이라고 하지 않을까. 인용한 시들은 연가戀歌에 속한다. 시①은 가슴이 통하는 이상형의 상대를 동경한다기보다 그렇지 못함에 안타까움이 배여 있고, 시②에서 그대나 당신은 한 사람의 이성으로 한정되어지지 않고, 신이나 신앙의 대상으로써 의탁하고픈 믿음일 수도 있다. 그리고 누구나 갖는 구원이나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시③에서는 어느 특정한 대상이든지 진리인 하늘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에서 오는 기쁨을 읊는다.
①내 봄은/톱니처럼 돌고 돌아도/참 뜻 하나/바로 세우지 못하고/어둔 밤 뜻 없는/그림자밟기로 분주한/방향 잃은/찢어진 바람이다//궁핍한 가슴에/여유롭게 꽃 한 송이/품을 수 없는/흔들리는 촛불이다
-시「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일부.
②죽음보다 깊은 겨울 숲에서/아린 북풍 받아내는 몸속으로/덜어낼수록 무겁게 흐르는/거칠고 질긴 삶의/바위처럼 깊은 침묵을//내 가난한 마음이/넘치게 품었던 기대를 덮고/허줄한 쭉정이도 될 수 없어/허허롭게 웃어야 하는/빈 수레의 헐거움을
-시「동충하초冬蟲夏草」의 일부.
③바람이 분다/돌개바람이 분다/망나니 바람결을 거스르며/찢어지도록 깃발이 몸부림친다//도로변 퇴색된 이정표/목이 흔들리다가 꺾이고/육신이 허물어져/단말마 비명을 지른다//그 깃발 고스락에서/갈피 모를 나는/차라리 돌개바람 타고서/우화등선羽化登仙을 꿈꾸고 싶다
-시「돌개바람」의 전문.
시인 심지향은 지금 현재 온갖 병마病魔에 시달리고 있다. 정신적 고통이 쌓여 육체적 병인病因의 응어리가 된다고 했다. 아무렇게나 발산할 수 없는 활화산, 의지와 극기로 누르고 있던 인고忍苦의 한계점에서 점차 부실해져버린 육신, 시①에서는…이미 찢겨진 바람이다…흔들리는 촛불이다…로 절망을 읊었고, 시②에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자신의 육체를 ‘거칠고 질긴 삶의 빈 수레의 헐거움’으로, 시③에서는…단말마 비명을 지른다…차라리 돌개바람 타고서/우화등선을 꿈꾸고 싶다…라고 고통에서 벗어나 하늘 어디든 날아가고 싶은, 병마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 아무런 고통 없이 인생을 마감하는 것도 복이라면 복일까. 평자는 이 시인의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기원한다.
억새는 볏과의 다년초. 산이나 들에선 ‘억새’지만 습지나 냇가에선 ‘갈대’로 통한다. 서양에서 이 식물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상징하는 말로 쓰이기도 하는데,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는 셰익스피어의 명언은 그 연장선상에서 생긴 말이다. 그러나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파스칼은 『명상록暝想錄』에서 갈대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가진 인간’을 의미한다.…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인간은 한 오라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 가장 약한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을 없애버리려면 우주 전체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 연기, 한 방울의 물로도 충분히 인간을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는 숭고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또한 우주가 자기보다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우리들의 모든 품위는 따라서 사고思考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올바로 생각하도록 노력하자. 이것이 도덕의 원칙이다.…라고 설파했다. 파스칼은 우주의 무한한 침묵이 두렵기는 하지만 사고에 의한 인간성의 근본적 자각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인간을 갈대에 비유한 것이다.
심지향 시인의 네 번째 시집『시들어도 눕지 않는 억새처럼』은 격조 높은 시어와 문체로 사상의 빛을 더하면서, 주정과 주지를, 때로는 현실참여를 하면서 인간의 본질적 물음에 부드러우면서 가깝게 근접한 시집이라고 할 수 있다.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심오한 철학과 종교 신념이 서로 삐걱대지 않고 잘 어우러진 화음 속에 새로운 시작법詩作法 방향모색의 노력도 엿보인다. 맑은 영혼으로 밝은 사상으로, 마치 혼류와 탁류 같은 우리 한국의 시단에서 보다 새로운 이정표로 자리하여 우리의 미래문학의 길을 여는데, 많은 독자들과 더불어 일조하는 시집이 되길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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