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슭에서
1988. 09. 삼성전자 사보(정리)
"왼발 가락에 볼펜을 끼워 전화 다이얼을 돌려봅니다."
"지금 .... 하신..... 말씀은.....?"
"보리밥이면 어떠하며 보리죽인들 아니, 소금 국을 먹고 산다해도 불평은 하지 않을 것 입니다. 걸을 수 없는 두 발, 잡을 수 없는 양손, 가진 건 전부 그것 뿐 입니다."
심장의 박동으로 살아 있음을 느낄때, 삶 자체가 고통이고 탄식인걸.
탄식은 허공을 치는 빈 소리 일뿐, 응어리진 가슴은 시퍼렇게 멍 가실 날 없을 테니 어디 소망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생의 환희보다 절망을 더 많이 만난 삶의 현장이었던 것 같다.
그들도 내가 지닌 슬픔만큼이나 큰 고통을 지녔고, 그 삶이 희망과 용기와 기쁨으로 바꿔지기엔 내 가슴으로는 역부족일 때가 많았다.
주어진 여건이 극한 상황일지라도 감사와 기쁜 마음으로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 보라며 뉘라서 입을 열어 용기를 줄 수 있겠는가.
고통으로 점철된 수많은 아픔의 날들은 어떤 언어로도 위로되어질 수 없었음에.
"당신께서 내게 아무리 큰 사랑을 준다해도 남편 앗아가지 않은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내가 믿는 하느님을 향해 나는 절규하였었다.
"잔인하고 부당합니다. 당신께선, 내가 얼마나 더 깨어지고 초라해지길 바라고 계십니까?"
어려움이 지나칠 적마다 울분의 투정이요 항변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절망과 좌절뿐, 죽음이 두고 간 빈자리는 빈자리 일 뿐이었다. 그러한 고통을 통하여서 인간의지의 한계성, 생명의 유한성을 깨닫도록 하였었다. 또한 만용도 과욕도 부리지 않는 순리의 삶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생활이 주는 어려움에도 주저앉거나 좌절하지 않고 일어서서 다시 시작하는 끈기와 인내의 방법도 터득할 수 있었다. 주어진 어떤 극한 상황일지라도 일상적인 생활, 또는 삶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겸손도 배울 수 있었음에 이러한 모든것 전부가 내가 받은 은총이요 축복이고 신앙임을 알았다.
작은 사랑의 실천, 오늘까지 2000시간의 봉사를 할 수 있었음은 결코 내 의지만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고뇌와 절망의 역경을 딛고 일어서기도 여러 번이었으나, 희망을 잃지 않고 창조적인 삶을 일궈가겠다는 상담자의 힘찬 음성을 들었을 때 봉사의 보람은 물론 보이지 않는 어떤 강한 힘을 느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여 왔다.
왼발가락을 움직여 다이얼을 돌려 보는 삶의 고통, 어떤 언어로도 위로될 수 없는 삶의 아픔을 만났던 ,그 삶을 기쁨과 감사와 평화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나는 그에게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
삶의 기슭에서 또 하나의 아픔으로 남을 때가 있다.
그러함에도 도움이 필요한 곳 그의 아픔을 들어주고 그와 함께하여 주는 위로자가 되어 주고자 상담 봉사는 오늘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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