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
오래 전 일이다.
나를 돕던 ㄱ양의 남자는 군 입대를 빌미로 임신한 그를 배신하고 가버렸다. 그네의 얼굴에는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하였다. 차일피일하다보니 배는 불러오고 방법을 찾으려고 아동복지상담실로 방문하였지만 아무런 결정도 못 하고 만삭이 다 되었다.
미혼모는 되지 않겠다며, 수술해 주겠다는 병원에 입원하였다고 ㄱ양의 떨리는 음성이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다급한 마음에 "그건 살인이야, 살인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상 나로서는 묵인하지 않아." 하고 큰소리로 단호하게 말해 주었다.
생명의 고귀함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는지, 수술은 하지않고 약물로 유도 분만을 하여 한 달을 당겨 아기는 태어났다. 그런데 솜털이 보송보송 솟은 뽀오얀 피부의 신생아 얼굴에는 시퍼런 멍줄이 여기저기 흉하게 그어져 있었다. 놀람과 두려움으로 많은 걱정을 하였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생산 기미가 없어 고민하였는데 배 아프지 않고 소원이 풀렸다며 사랑으로 키울테니 걱정 말라고 좋아하던 마음 착한 이웃 아주머니의 모습을 본 지도 벌써 20여 년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미혼모였다는 벗을 수 없는 멍에와 정신적 윤리적 입장에서 받는 양심의 가책으로 그네는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기조차 싫은 한마디 던지고 받은 살인이라는 말로부터는 자유로울 것이다. 그리고 아들 얻어 기뻐하는 한 가정에는 희망이 되었고, 생명을 살렸다는 엄연한 사실을, 상처의 치유책으로 가슴에 받아들인다면 ㄱ양 그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지금은 어디서 살아가고 있는지.
양어머니 등에서 널찍한 볼우물 패이는 웃음을 보여주던 흰 피부의 그 아이는 지금쯤은 대학생으로 자랐음직도 하건만.
뚝 끊겨진 한 통의 필름이지만, 기쁨으로도, 아픔이 흉터로도 나타나는 영상이다(1976년3월경으로 기억)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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