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들녘

나도 늙었나 보다.

아우를 2018. 11. 14. 07:27

                                    나도 늙었나보다.

천안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봉천동 동생집을 가는 시간이 예상 보다 길었다.

길어야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4월 14일 토요일이다.
경부고속도로의 교통사고를 비롯하여, 교통 혼잡은 두 분의 부모님을 지치게 하였다.
"여보, 서울의 행사가 있어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합시다."
"그래야겠어요."
"내가 이러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구료."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멀미하시는 아버지의 등을 두들겨 드리면서 잠시 쉬게 하였으나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휴게소에 들러서 쉬었다 가자고 하였으나 그냥가자고 하시는 아버지시다.

서둘러 떠나려고 도착하기 10분 전 아파트단지 앞에 나와 계시라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아버지는 외출차림이 아닌 평상복차림으로 내려오셔서 하시는 말씀, "왜, 내려오라고 하였느냐," 고 하신다.
귀가 어두우신 어머니께 드린 전화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신 것을,

 6층 아파트에서 두 분이 양쪽의 엘리베이터로 서로 엇갈려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1시간 넘게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차로 고속도로가 막히기도 잘 달리기도 하는지라, 서둘렀던 일이 더 늦어졌다.
장손자의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더는 서울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셨으면 좋으련만, 아마, 손녀 결혼식에도 참석하겠다고 하실 게다.

1시 30분 경에 예산을 출발하여, 천안을 거쳐 봉천동 동생집 도착시간이 오후 6시경이었으니, 나도 지처 있었다.
지친모습의 아버지, 침대에 눕자마자 하시는 말씀은

"나도 이제 늙었나보다."
동생과 나는 얼굴을 마주보면서 박장대소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팔청춘인줄 아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하루 10000보 걷기운동에서 줄어들기는 하였어도 지금도 4000보 걷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아버지로서는 그러실 만도 하겠으나,

11명의 증손을 두신 아버지는 구순이시다.
평생을 정직과 성실, 베푸는 일이 몸에 배신 분들이시다.
어떤 역경과 고난이 있어도, 늘 희망을 갖고 사셨다.

10여년 전이다. 답답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엄마! 아들이 한의원을 차리겠다는데, 걱정이 앞서요."

"걱정할게 무어냐, 샘물파면 물 나온다. 물 나오면 고기가 생기게 마련이다. 걱정하지마라."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어머니시다.
나는 그때 대단한 말씀도 아니었으나 위안을 받았다.

아직은 지팡이 짚지 않고 생활하시는 부모님께서 살아계셔서 나는 늘 부자처럼 마음이 든든하다.
아침밥은 먹었느냐, 때 거르지 마라, 너 좋아하는 열무김치 담아놓았으니 가져가거라.
또는 운전 조심하라는 등 시시콜콜 작은 일로 딸 걱정이시다.
부모가 자식 걱정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나도 자식들이 느끼기에는 시시콜콜 걱정을 한다고 할게다.
아마도 동서고금을 통 털어도 한국의 부모님들 같은 가없는 사랑의 걱정은 없을 것이다.
자식 키우며 사랑의 걱정이 있었기에 나도 어려운 줄 모르고 살아왔다.
어려운 고비가 있을 적마다 자식들 커가는 힘으로 잘도 버텨 온 삶이었다.

부모님께서 사셨던 삶처럼 나도 인내하면서 그렇게 어른이 되어,

어른이 된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걱정, 행복한 걱정을 하면서 살고 있다.

90세의 연세가 늙었다고 생각지 않으시는 아버지, 세월이 그곳까지 와 있는 거지 아버지는 늙지 않으신 것이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들 걱정 접으시고 두 분만을 위하여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세요.

2012년 0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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