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향유
가을이라기에는 조금 이르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이 유독 맑고 드높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나와 놀기가 미안하였는지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근 50년의 서울 터전을 떠나 와 이곳 예산에 마음을 묻고 정 붙여 살겠다고 저녁노을을 친구삼아 산책을 나섰다.
거미도 산책길에 있었다. 얽히고 설킨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떨어지고 다시 오르며 또 오르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자리 잡고 쉬는가 하더니, 걸린 먹이를 냉큼 잡는다. 외로워 산책 나온 친구인가 하였더니 길목을 지키고 먹이사냥을 나왔나 보다. 저녁노을 붉은 빛이 무색해 한다. 산다는 것이 그리 쉬우면 누군들 고생을 하겠는가. 삶의 의미를 거미도 알고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노교수의 방문이 있었다. 기차타고 오면서 뭐 하셨냐고 여쭸더니, 구름이 너무 예뻐서 그걸 감상하느라 달콤한 낮잠도 마다하셨단다. 그 구름이 얼마나 탐스러웠기에, 하늘에 취해 계셨을까. 맑고 드높은 이 하늘에 그 구름을 몰고 올 수 있다면, 창소리유수지 공원*의 산책길이 더 풍요로울 것 같다.
늪에는 연꽃이 한 두 송이 여기저기 아직 고개를 다소곳하니 들고 있다. 지난 여름의 마지막 잔치를 치루고 가려는 듯.
돌아보면 세월은 아직도 저 먼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것 같다. 젊어서는 세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우겠다고 동분서주하였다. 고생인지도 모르는 세월이었다. 사랑이 아니었다면 그 힘든 삶을 마다하지 않고 지켜낼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움으로 슬퍼하는 것도 사치였다. 삼남매를 지켜 키우려하니 힘에 겨워 길가에 멍청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도 저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겼는데, 나는 어찌하여 혼자서 세 아이를 키워야 하는가. 저 지나가는 사람들 보다 내 부족한 것이 무엇이기에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현실만 탓하며 우두커니 앉아 힘겨워 할 상황이 아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지금의 환경에서 벗어나야 하였다.
그렇게 삼남매를 키워 놓고 보니 나는 세월의 서리를 맞은 듯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에 육신은 진이 빠져 관절의 뼈마디는 비가 올 것이라고 일기예보도 해 준다. 엉겅퀴같은 손과 발, 거기에 기억력까지 누가 훔쳐갔는지 휴대폰을 손에 들고 방 구석구석을 찾아다니길 어디 한 두 번이겠는가.
그래도 그런 내색 한 번 하지 못하고 혼자서 자괴감에 빠져 세월 저 멀리의 나를 생각해 본다.
마음은 그대로 인 것 같은데, 몸은 전 같지가 않으니 말이다.
아들의 혼배성사(결혼주례)를 보셨던 신부님이 얼마 전 은퇴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말했더니 아들의 반응이 흥미롭다. "세월은 무상하지 않은데, 거기 잠시 머무는 사람만 무상하죠."
이제 가을이 깊어 갈 것이다. 찬바람이 옷깃을 저미게 할 때, 아침저녁이면 창문이 잘 닫혔는가, 확인하는 나이가 되었다.
조금 전 외로워 산책을 나왔는가 하였던 거미의 주위에는 지난 여름 꽃창포, 붓꽃, 고랭이, 부들 이 피었다 지었음을. 그리고 내년에도 그들이 다시 피어 날 것임을.
노 교수의 눈에 비추었던 구름 빛도, 아들의 주례를 봤던 은퇴한 신부의 눈에 머물렀던 아들 내외의 젊음도, 여기 남아 있는 연꽃처럼 희망이 되어 다시 피어날 것이다.
그 순간순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희망과 삶의 바탕이었기에, 난 이대로 산책길에서 행복을 향유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 나를 아직도 기다리는 세월을 따라 나도 흘러가겠다. 아름다운 삶을 모든 이웃들과 공유하며 선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가겠다.
2017년 9월 어느 날
*창소리 유수지 공원 :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례원 부근
부산 해운대 아침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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