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들녘

몽당연필 2018년 9월 6일 오전 02:56

아우를 2018. 9. 6. 04:24


                                                                                                                            수필문학 초회추천

    몽당연필 

  초등학교 3학년 쯤 이었을까? 
  몽당연필이 책상 위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마루 바닥 작은 구멍으로 쏙 들어갔다. 옹이가 떨어져 나가면서 구멍이 생긴 것이다.  하필 그 작은 구멍으로 들어갔는지 황당 하였다. 연필이라고 해야 한 두자루, 몽당연필을 다쓰고 다른 연필을 써야 하는건데. 몽당연필을 찾아야 겠다는 절박한 마음은 마루 밑 네모난 통풍구 생각이 났다. 교실 밖으로 나가 작은 통풍구를 통해 겨우 기어들어 갔다. 지저분한 먼지를 뒤집어 쓰고 거미줄도 헤쳐갔다. 다행히 몽당연필은 있었다. 반가웠다. 눈에 들어 온 낯선 연필과 지우개를 집어 들고 나왔다. 그들도 주인을 찾아갔다. 몽당연필을 찾았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몽당연필을 찾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우습기만하다. 몽당연필의 가치가 내 수고와 비견될 수 있는 것인가. 몽당연필이라도 손에서 쓸 수 있을 때까지 깍지 끼워 쓰던 시대였다. 그때 어린 마음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내 인생을 그렇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별것도 아닌 몽당연필을 찾으러 마루 밑바닥으로 들어가는 무모한 행동을 지금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때때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책을 읽는 일인 것 같다. 그런데 책만 열심히 읽었지 무엇 하나

뚜렷하게 해 놓은 것 없이 세월만 움켜 쥐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 읽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은 내가 원하던 글 쓰는 일도 해 냈을 것이다. 당장 시급하였던 문제, 몽당연필을 필사적인 노력으로 찾았듯이 인생에 목표를 가지고 살았더라면 말이다. 그렇다고 후회는 하지 않는 성격이다.


  어느 날 나에게 물어 보았다. 

  ' 몽당 연필을 찾듯이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았다면 네 꿈은 조금 빨리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라고.

  ' 그러게, 꿈을 갖고 꿈을 이루려고 한다면 그 꿈은 이루어 진다.' 

  또 물었다. '너는 꿈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잖아.'

  '꿈을 꼭 말로 해야 하나?  꿈은 가슴에 늘 간직하고 생활을 하는 거야. 꿈을 함부로 말을 하는  게 아니야. 간직하고 있으면서 준비하는 거지, 의지와 신념도 중요하지만 열정도 있어야 돼. 꿈을 잃지 않는다면 더디더라도 꿈은 이루어지는 거야.'

  그리고 말했다. '네가 어려서 품었던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결국은 몇 십 년 만에 이루었지. 잃어 버린 몽당연필을 찾았던 기백은 아니어도 네가 원하던 것을 가졌잖아. 늦었지만 말이야.' 


  그때는 6남매의 맏이인 내가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줄줄이 올라오는 동생들에게 양보하였다. 어머니는 네가 진학을 하고 네 동생은 포기를 시키겠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만큼 배웠으니까 알아서 하겠다는 말을 했다. 어머니는 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책임으로 부모원망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진학의 꿈을 이루겠다고 서울로 올라 왔으나, 내 계획은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꿈에 도전하여 마침내 사회복지학과에 합격하였다.

 나이도 잊고 배우려는 못난 딸의 의지 때문에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던 80중반의 부모님은 나를 더 용기 백배하게 하였다. 부모님께 내가 알아서 하겠다던 약속을 지켜 냈기 때문이다.

  합격의 통지를 받고는 '오장육부가 다 즐거워한다.' 고 기쁨의 메시지를 아들에게 보냈었다. "그렇게 기쁘세요?" 라고 하면서 박사과정을 하던 아들은 어미의 학비까지 대 주었다.

  '지금 나이가 몇이신데 공부하겠다고 하느냐'는 반문도 없이 어미의 말에 기꺼이 허락해 주고 지지와 격려를 해 주었던 것이다.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었다. 공부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다 잊고 학업에만 몰입할 수 있었다. 또 다행인 것은 내가 가장 잘하는 독서의 힘이었다.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이 논문을 쓸 때 큰 도움이 되었다. 필사적으로 몽당연필을 찾았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이었다.

  청소년기에 이루지 못했던 학업에 대한 열망은 나이들어 대학원까지 가는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에 긴 세월이 갔다. 나이가 들어 인생이 무엇인지 알듯 한데, 아니 알고 있는데, 서산마루에 걸쳐있는 석양이 나를 보고 빙긋이 웃고 있다.

  '이제 서야 인생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라고 하며, 

 '인생이 다 그런거란다.'

  조롱하는 것 같지는 않으나 왠지 슬픈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웃으면서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이 아닌가요?

  긴 세월이 지나 늦었다고 해도 이제 몽당연필에 숨겨진 또 다른 꿈을 향해 도전하렵니다.


  석양의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서 나는 빙긋이 웃어주었다.  

                                          

                                                            2007년 08월 22일    대학원을 졸업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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