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 물-
철학의 길 열어준 한국 1세대 철학자 김형석 교수
"문제의식은 철학과 인문학으로 나아가는 힘"
-구순을 넘으셨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정말 건강하신데요.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요?
☆☆ 어릴 적에 건강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상 조심하고 절제하면서 사는 습관이 붙었죠. 건강에 대한 개념도 조금 다릅니다. 흔히들 건강유지를 위한 건강을 목적으로 몸 관리를 하는데 저는 '일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몸 관리를 해요. 일하기 위해 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슨 일이든 무리를 하지 않지요. 평소 원고나 강연을 청탁받으면 부담스럽지 않게 마감날짜 4~5일 전에 모든 일을 끝냅니다. 20여 년 넘게 수영도 하고 있어요. 작년에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영장을 찾았지요. 많은 일을 하면서도 쫓기며 일하지 않고 여유를 지니고 살아온 게 건강 비결인 것 같습니다.
-정년퇴직을한 지도 벌써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 청탁오는 원고를 쓰고 일주일에 두세번은 강의도 나가지요. 가끔 '내가 어떻게 지금까지 일할 수 있게 된 걸까?' 생각하게 되는데, 집중적인 사고력 덕분인 것 같아요. 신문을 읽으면 세상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느끼게 되고 문제의식이 생기거든요. 그러면 문제의식과 사고력을 이어가지요. 해결 방법을 궁리하게 되고요. 또 그걸 글로 쓰거나, 사람들한테 강의로 전하지요. 그런 사고력이 일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글을 써보면 표현은 과거만 못할지 몰라도 생각은 더 낫다고 느껴요. 그만큼 경험을 더 쌓았으니까요.
-베스트셀러 작가로 젊은이들의 '원조 멘토'인 셈인데요.
☆☆ 저와 김태길 선생, 안병욱 선생이 3대 철학자라고 불리던 시절이에요. <<영원과 사랑의 대화>> 책 덕분에 제가 많이 유명해졌지요. 생각했던 것보다 그 시절 젊은이들이 받은 영향이 큰 것 같아요. 그때 제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어느덧 장년층이 됐는데요, 지금도 강연을 하면 인사하러 오는 이들 대부분이 60대입니다. 강연회 장에서 두 손 마주 잡으며 젊은 시절 제 글이 큰 힘이 됐다고 인사하는 이들을 보면 그 시대(1960~1970년대) 젊은이들에겐 우리의 글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철학자 1세대'라는 수식어가 꼭 따라 붙습니다.
☆ 현대 철학이 학문적으로 출발한 것이 해방이후에요. 해방되면서 우리말을 가지고 철학이 시작됐고, 한글로 책도 쓰게 됐지요. 저 역시 출판사에 의뢰받아 대학생들을 위한 <<철학 입문서>> 를 썼는데요. 보통 교수들이 글을 쓸 때 '모르는 건 너희 책임이다, 따라와라.' 식인데 다행히 저는 중학교에서 7년간 교편을 잡았기 때문에 눈높이를 맞춰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썼어요. 그래서 제가 쓴 책이 인기를 끌었고, 책의 생명력이 길었던 것 같아요. 철학이 시작한 해방 이후가 '철학 1세대이고 정확히 말하면 제가 철학 1.5세대인 셈인데 철학자 1세대라고 불리는 것은 학생들이 철학에 접근하는 길, 그 길을 열어줘서가 아닐까 싶어요.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이 위기에 처했다고들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대학생들이 말하길 대학에 '학자는 있는 것 같은데 사상가가 없다'고 해요. 맞는 말이에요. 그들의 인간적인 존엄성을 같이 고민하고 롤모델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이지요. 철학은 학문이 중요한 게 아니고 '철학적 사고'가 중요해요. 그래야 인문학으로 이어지죠. 우리사회엔 인문학을 통틀어 이야기할 수 있는 사상가가 필요합니다. 철학가를 안다, 작가를 안다고 하지만 그 사상이 우리 젊은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느냐 묻는다면 대답이 쉬이 나오지 않아요. 인간 문제와 호흡을 같이 하는 게 인문학인데 문학과 예술을 했지만 인간 문제에 닿지 못한 것이지요. 인문학의 빈곤입니다.
-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신다면?
☆☆ 역사적인 견해와 안목으로 멀리 내다보고, 세계를 걱정할 줄 아는 지도자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서는 인문학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선직 국가는 인문학이 뿌리, 사회과학이 줄기가 되고 자연과학과 기계공학이 가지와 열매가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필요한 것만 급하게 받아들이다 보니까 서양에서 가지, 꽃만 받아왔거든요. 그것도 기계공학이 먼저, 자연과학은 나중에 연구하다 보니 기초과학이 없어 노벨상도 못 받았지요. 줄기가 되는 사회과학이나 뿌리 내린 인문학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방대학원에서는 인문학의 기본인 민주주의, 사회윤리, 역사를 중점으로 가르치고, 그 과정을 이수하면 어디서든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추었다고 인정하고 있어요. 우리도 인문학을 기본으로 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 정년 퇴임 후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초대 최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 재료가 잇어야 집을 짓는 법이잖아요. 독서를 안 하면 재료가 없기 때문에 창의력도 사고력도 없어요. 저는 어릴 적 읽었던 것들이 후에 재료가 돼서 제 '사상'이 됐거든요. 그만큼 독서는 중요한 것이예요. 책 읽는 방법으로는 연령에 맞는 동화에서부터 시작해서 인문학적 소양이 될만한 책을 읽고 그다음에 과학적 소양이 될 만한 책을 읽는 것이 좋아요. 사회과학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책은 이른나이에 읽을 필요는 없어요.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이 쌓이고 자신의 사고가 생기고 문제의식이 생길 때 읽는 것이 좋지요.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문제의식 없이 읽으면 아무것도 안돼요. 요즘 학생들은 문제의식 없이 그저 시험문제를 치르기 위해 공부하지요. 그러니 자기화 시키지 못하고 시험이 끝나면 금방 잊어버리는 거예요.
-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 분야별로 자신에게 맞는 몇 권을 정해 읽었으면 해요. 그렇게 자신이 정하다 보면 몇 권은 기억에 남거든요. 중·고등학생의 경우 벤저민 프랭클린의 <<프랭클린 자서전>>을 읽어도 좋고요, 유명한 소설이나 인물 중심으로 다룬 역사에 대한 책 중에서도 몇 권을 선정해 방학 동안읽었으면 합니다. 성경은 한 권을 다 읽으려고 하면 어려우니까 창세기, 마가복음 이렇게 차츰 읽어가는 것이 좋겠고요, 톨스토이의 <<인생론>>같은 책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차혜원 기자@
철학교육의 개척자
철학은 학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고'가 중요하다며, 오늘날 빈곤해지는 한국인문학을 걱정하는 한국 철학계의 대부 김형석 교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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