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 교수의 철학과 현실 <자전적 에세이> 12회 마지막 회를 마치면서
김형석 교수님의 철학과 현실 <자전적 에세이> 12회 분 마지막 원고를 마쳤다.
3년의 긴 시간의 원고 워딩과 교정이었다.
교수님의 자전적 에세이를 보면서 그분의 삶과 인생, 가치관, 철학과 사상, 신앙관, 종교관 등은 눈으로만 읽을 수 없는 가슴의 감동과 울림과 떨림이었다.
그 분은 학자이면서 신앙인 이면서 그리고 철학자이시면서도 수필을 쓰신다.
교수님께서는 99세 연세이면서도 철학 강의를 하실 때면 눈은 젊은 청년 같은 모습으로 연대까지 틀리지 않고 기억하면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신다. 강연을 하실 때는 99세 노인이 아니라 청년 기백의 모습이었다
우리 모두의 멘토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모범적인 삶을 사시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마 서산의 해가 넘어 가는 순간까지도 사명감으로 역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교수님은 지금도 원고를 쓰시고 강연을 소화해 내신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강연 요청과 원고 청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단 한 가지라도 우리가 기억하고 실천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공부를 하는 국민이기를 요청하신다.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 쉬임없이 책읽기를 권하신다.
그리고 취미활동을 시작하라고 강하게 권하신다. 생각해 보면 혼자 있는 날들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은 일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일을 한다는 것은 건강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덧붙여서 정직한 국민이 되자고 하시고 또 말씀하신다.
정직한 인생을 살자.
거짓 말은 내 인격과 내 인생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신다.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고도 하신다.
교수님의 자전적 에세이 마지막 장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
에서는 보편적인 인간의 내면을 피력하셨다.
'문득 서산을 바라다보았더니 내 인생의 태양이 산마루에서 나를 내려다 보는 듯 싶었다. 곧 해가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남은 시간이었다. 늦기 전에 조용히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할 시각이다.'
라고 술회 하셨다.
'붓은 더 이상 쓰지 않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하시면서
'강연을 하는 일은 1년 쯤 계속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도 술회하셨다.
'고향에 대한 생각에 대해서도 더 늙기 전에 내 젊었을 때 삶을 보살펴 준 북녘 땅 고향에 한 번 다녀오고 싶은 생각의 간절함을 피력'
하시면서 고향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고도 말씀 하셨다.
'내 인생의 계란을 깨고 나온 병아리가 큰 닭이 되어 오늘에 이른 과정과 같아졌다. 지금은 내 삶의 출발점이었던 공간인 신체적 고향은 뒤로한지 오래다. 내가 갈 곳은 다가오고 있는 인생의 종착으로서의 정신적 고향이다. 신체적인 공간으로서의 고향을 떠나 정신적 삶의 영원을 찾아가는 새로운 고향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자유는 운명이 아니었고 어떤 섭리의 길이었음을 믿게 되었다.'
고 하셨다.
'나는 내 인생을 반성해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한 일과 삶은 남는 것이 없었다. 나와 더불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더불어 산 것은 행복했다. 가족과 이웃은 물론 직장과 삶을 같이한 모든 사람과 더불어 의 행복이었다. 그런데 사회와 역사, 때로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걱정하고 노력했던 마음과 정성은 민족의 역사와 겨레의 희망이 되었다고 믿는다. 그런 것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지 못했고 희망을 상실했겠기 때문이다.'
'나는 무엇을 남기고 싶었는가. 진실을 찾아 누리고 싶었고 사랑이 있는 영원한 고향을 소원해 왔던 것 같다.'
하시면서 마지막까지도 가슴을 울리고 있으셨다.
3년의 긴 세월인 듯 하였으나 순식간에 지나갔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타이핑을 치고 교정을 보면서 지내왔다.
그러면서도
그동안에 많은 일을 진행하였다.
<나는 아직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
<백년을 살아보니>,
<행복 예습> 신간 서적까지 타이핑과 교정을 열심히 보면서 제자 된 마음의 자세로 일을 해 왔다.
<예수>, <어떻게 믿을 것인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남아있는 시간을 위하여> 등의 책들과
동아일보 칼럼, 조선일보 백세일기 등을 교정과 타이핑을 보아 오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인생이 무엇인가고 깨닫기도 하였다.
동아일보 칼럼과 조선일보 백세일기는 당분간은 진행 될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나름 인생은 문제해결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러나 거기에는 내 의지대로는 되지 않았다. 그 과정과 내 삶의 구비고비마다 어떤 은총의 섭리가 개입하여서 오늘에 이르도록 도와 주셨다고 고백한다. 나를 지켜주시고 모든 내 삶에 사랑으로 지켜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제까지 김형석 교수님의 원고를 정리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실력이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현대 어법과 내용의 흐름을 현실감있게 고쳐 쓸 수가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무척 좋아하고 읽었다는 사실이다.
논문이라고 해야 두편을 만들었다. 그것도 내게는 감사의 마음이고 그때 더 많은 책과 논문과 서적을 읽었던 것도 나에게는 큰 도움이었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타난 애정모티브>
에 대한 논문과
<노인종합복지관 프로그램 참여가 노인의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에 관한 연구는 내 인생의 많은 도움으로 남아 있다.
감사하고 그리고 기쁨으로 내 삶을 위로하고 그리움을 안고 살고 있다.
나는 지금도 희망을 갖고 내 인생에 마지막 숙제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저 하는 삶을 살리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내 인생도 서녘의 산마루에서 태양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왠지 재촉이라도 하는 듯 하다.
그러나 천천히 과욕부리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김형석교수님께서는 99세 이신데도 글을 쓰시고 강연을 하시지 않았나.
나는 그분의 제자 된 마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리라.
모두에게 감사하면서~
2018년 08월 08일 저녁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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