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세 축하식에서 만나자
"생신 축하 합니다.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합니다."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두 분의 직계가 모여 90세 생신 축하는 풍요와 감사, 축복의 자리였다.
6남매의 자식들 손자, 그 손자의 자식들 증손,
부모님의 직계들이 다 모여 축하의 노래를 불러 드렸다.
오래만에 만났는데도 어제 만난 친구 사이처럼 재잘되며
손을 잡아주고 먹을 것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얼굴마주보며
호호 하하 깔깔대며 시끌벅적 즐거워 하는 증손자녀의 모습은 보기에도 좋았다.
3개월된 외 증손은 인터넷으로 대신한 축하였으니
부모님의 기쁨으로 우리의 6남매 가족 모두도 기쁘고 행복했다.
거기에 아버지의 동생들까지 모이니
아버지의 만면에는 싱글 벙글 기쁨이 더욱 배가 되었다.
동생의 사회는 증손자녀들의 장기자랑을 이끌어 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증손녀는 태권도 3품으로 돌려차기의 모습을 멋지게 보여 주기도 하고,
노래또한 분위기있게 아름다운 음성으로 감동을 불러 주었다.
다른 증손자녀들의 장기자랑을 보려니 하루해가 모자랐다.
박수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워 가족들의 즐거움을 더하여 주는 축하의 시간이었다.
건강한 부모님이 살아계시기에 우리는 늘 부자로 살아 갈 수 있는 힘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를 사신 어르신들의 삶, 압박과 설음의 고단함은 익히 들어 아는 바이다.
일제 강점기에 공출의 시달림은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굶주림과 배고픔, 시련의 삶이었다.
강제동원의 총알받이 힘없는 백성은 강제징용, 강제 노동과 처녀공출로까지 저질러진 일제의 만행의 역사는
골깊은 상처로 남은 한의 역사이고 설음의 역사다.
놋그릇조차도 전쟁의 무기로 앗아간 역사요,
국가 잃은 백성의 피폐함을 어찌 필설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공민 수없시간에 어느 스승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왜놈들을 가마 솥에 달달 볶아 멧돌에 박박갈아서 술에 타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는다"
라는 말씀으로
우리는 그 시대 선조들의 고난과 아픔의 상처를 듣는 간접 경험을 하였다.
처녀공출 모면의 수단이 결혼이었을 어머니,
시대적인 아픔과 백성들의 고난은 가정 가정이 가난하고 어렵기는
뉘 집이고 거의 비슷 비슷 하였을 것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궁핍한 살림살이에 태어난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노고,
둘 째 동생을 등에 업고 머리에 보따리 이고,
23 살에 시작한 비단장사 길로 나서고부터 60 년 세월을
지켜오신 어머니의 근면과 성실로
우리가족은 잘 먹고 잘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어머니의 가슴을 헤짚어 보면 아마도
가슴에 멍울과 상처로 사랑의 고난과 행복으로 점철 되어 있으실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구순,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의 강한 신념과 의지,
희생과 사랑의 위대하심으로 오늘이 있게 된 것이다.
어렵고 힘든 날들이 많았을 터인데도 어머니는
한마디 고생스럽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신 분이시다.
아버지, 어머니
우리 가족의 기둥이십니다.
90 세가 되고부터는 신선으로 불려진답니다.
하늘에 있으나, 땅위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어서
그렇게 불려진다고는 하지만,
아버지. 어머니는 지금도 건강하시기때문에 진짜 신선이십니다.
행사가 끝나고 헤어지면서 아들이 조카들에게 던진 말이다.
우리 할아버지 100 세 축하식 때 만나자.
신선이신 아버지,
어머니 건강하게 100 세 축하식 때 지금의 모습을 뵐 수 있게 되길 기원합니다.
수필작가 30주년 기념호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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