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 - 원로 철학교수의 사랑을 위한 메시지

아우를 2009. 7. 18. 20:18

 

 7월 18일  김형석교수님을 뵈었다.

 바쁜 세월을 보내느라 연락 드리지 못한 날들이 많이 흘러갔다.

 세월이 더 가기전 뵈어야겠기에 빗 속을 지나,

세종홀 벨라지오에서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작년에 쓰신 책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고'

에 친필서명날인 하시어 귀한 책을 주시었다. 

 책머리의 말씀을 싣는다. 

 

 원로 철학교수의 사랑을 위한 메시지

 

 책머리에

 

 그리움은 영원한 것에 대한 사랑이다.

 

 긴 세월이 흘렀다.

 나는 그 세월 속에서 항상 그리움을 안고 살았다.

 그리움이 있었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사랑했다는 뜻이다.

 사랑이 그치면 삶도 끝나는 것일까.  

 아직도 나는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글들을 남기는가 보다.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오래 사랑해 온 것 중의 하나는 고향이다. 고향은 삶의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공간이 고향이 되면 나를 떠나버린다.

 평양 송산리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그때는 내가 태어나 4,5년을 보냈던 평북

운산을 기리며 지났다. 다시 가보지 못한 곳이다. 서울에서 60여 년을 살고

있다. 그 동안은 내 고향이 송산리로 바뀌었다. 탈북한 후에는 한 번도 찾아가

보지못한 땅이다. 생각해 보면 고향은 잃어버린 지난날들의 고장이다.

 다시 세월이 흘르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 고향인 때가 온다. 서울은

조국과 더불어 있기에 나의 고향이었다. 조국은 어머니와 같은 사랑이 가득한

삶의 터전이었다.

 땅 위의 내 삶이 끝난 후에는 고향과 더불어 나 자신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있어야 할 사라지지 않을 고향

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함께 흘러가 버리는 과거의 고향이 아닌

오래오래 가능하다면 영원의 품에 안길 수 있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젊음과 더불어 나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사랑했다. 여성 속에서 그리움을 채우고

싶었다. 어머니, 아내, 가까운 여성들을 대하면서 사랑은 아름다움을 만들어 냄을

깨닫고 배웠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사랑했기에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은 언제나

남아 있었다.

 지금은 그 여성들이 다 떠나갔다. 떠나가는 것이 세월을 사는 인생이다. 그래도

아쉬움과 그리움은 남아있는 것을 어떻게 하는가.

 

  다행스럽게도 나는 돈, 권세, 명예 같은 것들을 오랜 동안은 사랑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들에 대한 그리움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그대신 공부를 한답시고 학문과 진리,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선과 인격의

가치를 그리워하면서 살았다. 그 염원과 소망은 사라질 줄을 모른다. 그것이 내

삶이었기에, 때로는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그리움이 나를 사로잡기도 했다.

아름다운 노년기를 그려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치있는 것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법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 애국심을 말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라 때문에 울면서 살아야 하는 긴 세월을 보냈다. 3`1운동 때 태어

났다. 온 국민이 울고 있을 때였다. 일제강점기를 살았다. 웃음이 없는 세월이

었다. 조국의 분단을 겪어야 했다. 모두가 이산가족이 되었다. 그 한가운데 내

가 있었다. 한국전쟁을 몸소 체험했다. 한없이 슬프고 한스러운 기간이었다.

4`19를 치렀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피를 흘렸다. 독재와 군부정치를 이겨내야

했다. 울분을 호소할 곳이 없었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 울고 싶은 세월을 살았다.

 그래서 조국을 깨닫게 되고 겨레를 위해 살고 싶다는 의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녘의 동포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그렇다.

 조국과 겨레의 먼 앞날, 내가 드리고 싶은 기원.

 이것들은 나의 삶보다 더 귀한 것이었기에 사랑과 희망의 꿈이 그리움으로

남는 것 같다.

 울고 싶도록 그리워진다.

 

 그래서 세월은 흘러서 그리움을 남기는 것일까. 그리움은 영원한 것에 대한

사랑이기에.

                                                                                     

                                               

                  2008년 5월     김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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