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0.03.20 03:58
[나와 조선일보] [15] 김형석

1957년 4월 6일은 내 일생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날이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조선일보에 나로서는 처음으로 글을 썼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신문에 이름이 등장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30대 중반이었다. 1954년 주요한이 발행인이던 잡지 '새벽'에 '실존의 역사적 의미'가 실렸고, 이듬해 6월에는 고려대학신문에 '헤겔에서 마르크스까지'라는 비중 있는 글이 게재되었다. 1956년에는 '사상계'에 '현대의 역사적 본질' 정도가 발표되었을 뿐이다. 조선일보에 투고하고 실린 것은 그다음 일이다.
당시에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글이 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적은 편이어서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상의해 보는 쪽이 아니었다. 대학신문과 한두 일간지를 읽곤 하다가 조선일보를 보았다. 지금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그 신문에 '세계시민이 한 가족같이 살 때가 왔다'는 취지의 기획 혹은 연재 기사가 실렸던 것 같다. 몇 차례 읽다가 앞으로는 폐쇄적 민족주의나 국민 의식을 넘어 세계가 하나 되는 인간 가족의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어쨌든 '인간애(人間愛)의 세계'라는 길지 않은 원고를 조선일보에 보냈는데, 내 글이 한 지면 오른쪽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에 보낸 첫 글이었고 내 글이 실린 것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
자랑할 데가 없어, 아내에게 보여주면서 남편의 위세를 과시했던 것도 떠오른다. 그날 저녁때였을 것이다. 아내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신문에 실린 아버지 글을 너희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자랑했다. 둘째 아들이 "왜 아버지 사진은 없어?"라고 물었다. 아내는 "사진이 중한 것이 아니고 글 내용이 더 중한 거야"라면서 흡족해했다. 사진까지 실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이것이 내가 조선일보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앞으로는 더 많은 글을 쓸 것 같다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63년 전 일이다.
금년 4월은 내가 만 100세를 맞고 보내는 해이다. 2년 전부터 조선일보 주말 섹션 '아무튼, 주말'에 백세일기를 쓰면서 100세를 함께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게 100세는 긴 세월이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100년은 이제부터가 성년이다. 사회에 진실을 전하면서도 독자들의 올바른 가치 판단을 도와주는, 그런 새로운 탄생의 출발이 되었으면 좋겠다.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역사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처럼.
그때까지 나는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30대 중반이었다. 1954년 주요한이 발행인이던 잡지 '새벽'에 '실존의 역사적 의미'가 실렸고, 이듬해 6월에는 고려대학신문에 '헤겔에서 마르크스까지'라는 비중 있는 글이 게재되었다. 1956년에는 '사상계'에 '현대의 역사적 본질' 정도가 발표되었을 뿐이다. 조선일보에 투고하고 실린 것은 그다음 일이다.
당시에는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글이 실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인간관계가 적은 편이어서 누구에게 부탁하거나 상의해 보는 쪽이 아니었다. 대학신문과 한두 일간지를 읽곤 하다가 조선일보를 보았다. 지금은 정확한 기억이 없지만, 그 신문에 '세계시민이 한 가족같이 살 때가 왔다'는 취지의 기획 혹은 연재 기사가 실렸던 것 같다. 몇 차례 읽다가 앞으로는 폐쇄적 민족주의나 국민 의식을 넘어 세계가 하나 되는 인간 가족의 역사가 전개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 같다.
어쨌든 '인간애(人間愛)의 세계'라는 길지 않은 원고를 조선일보에 보냈는데, 내 글이 한 지면 오른쪽 상단을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에 보낸 첫 글이었고 내 글이 실린 것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
자랑할 데가 없어, 아내에게 보여주면서 남편의 위세를 과시했던 것도 떠오른다. 그날 저녁때였을 것이다. 아내가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신문에 실린 아버지 글을 너희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자랑했다. 둘째 아들이 "왜 아버지 사진은 없어?"라고 물었다. 아내는 "사진이 중한 것이 아니고 글 내용이 더 중한 거야"라면서 흡족해했다. 사진까지 실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이것이 내가 조선일보와 맺은 첫 번째 인연이다. 자랑스럽기도 하고 앞으로는 더 많은 글을 쓸 것 같다는 희망도 가져보았다. 63년 전 일이다.
금년 4월은 내가 만 100세를 맞고 보내는 해이다.
바다로 가는 강물처럼, 역사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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