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지지 않는 눈빛
잊혀지지 않는 눈 빛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하여 모리야 땅으로 가는 신앙의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고뇌,
번민을 느끼며 감동한다.
무덥던 그 해 여름, 큰 아들 베드로가 느닷없이 신학교에 가겠다고 하였다.
나는 멍하니 아들의 얼굴을 쳐다 봤다.
"지금 무슨 말을 하였니?"
"신학교에 가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나이 어려서 잃은 아빠에 대한 슬픔때문에 인간 의지의 한계를 깨달은 것일까.
그리움으로 삶을 영원한 곳에서 찾으려 하였을까?
철부지 세 아이들의 자라는 모습은 남편의 요절에서 얻은 골깊은 상처를 감싸 주는
유일한 위안이고 희망이었다.
또한, 나의 잠재 의식속엔 그간 남편의 죽음이 준 인간적인 절망의 보상을 큰 아들에게서 받으려 하였던 것 같다.
물론,
자신을 바쳐 봉사의 삶을 사는 사제가 되겠다는 뜻은 높고 고귀하지만,
하필,
그 멀고 험한 수도자의 깊을 택하려느냐,
주님의 영혼구제 사업이 꼭 성직자가 되어서만이 가능한 것은 아니잖느냐,
며 격정적인 어조로 말하였다.
하루 이틀 한 두해도 아닌 그 수많은 날들에 젊음의 열정을 불살라
주님만 의지하고 봉사할 수 있는 신앙이 과연 아들에게 있는걸까.
깊은 생각에 잠겨 아들의 면면을 짚어 보았다.
자식들의 문제 하나 하나가 대두 될 때 마다 헤치고 온 순간 순간, 가슴 저미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때로 기억 저편의 아빠를 그리는 어린 자식들의 눈물겨운 모습은 내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커다란 고통으로 남아, 남편의 고뇌진 모습으로 다가와 더한 상처를 입혀준다.
이런 슬픔과 외로움의 역경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78년 6월 부터 지금까지 상담봉사하여 왔다.
그동안 숱한 사연과 접할 수 있었다.
생의 환희보다 슬픔을, 의욕보다 좌절을, 희망보다 절망을 더 많이 만난 삶의 현장임을 느낀다.
고통스런 삶에서 희망과 용기와 기쁨으로 전환케 하기 까지에는 내 가슴으론 역부족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때때로 절망중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창조적인 삶을 만들어 가겠다는 강한의욕을 펼쳐보이는
내담자의 힘찬 음성을 들었을 땐 봉사의 보람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런데, 정작 내 아들 문제 앞에서는 자신을 다스릴 자제력까지 잃고 있었다.
상식적인 이해를 뛰어 넘지 못하는 것이 자식의 문제인가 보다.
사제란 봉사하는 삶인데,
부모가 자녀를 위해 끝없는 사랑으로 희생하는 봉사는 일반적으로 결혼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적으로 얻어 지지만, 사제로서의 봉사는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이루어져 모든 신자들을 영적으로 다시 나게 만드는 역할을 해야 된다.
그러한 희생과 봉사, 복음적 삶의 실천은 생에 대한 기쁨과 감사 희망을 주는 그 분의 도구로,
그속에서의 하느님 현존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러한 봉사의 삶을 통하여 사제는 완성되어 가는 것이다.
사제직에 대한 기초적인 자세를 큰 아들 베드로가 얼마나 터득하고 있는 건지.
나는 인간 내면의 힘든 아픔으로 긴긴 밤을 뜬눈으로 지세인적이 헤일 수 없다.
그런 역경과 고뇌를 지고 앞으로의 수십성상을 아들 진호가 어떻게 견디며
봉사의 삶에서 고귀한 신앙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을 까 하는 염려도 떨쳐지지 않았다.
기실,
맏 자식을 바쳐 사제성소의 길을 가도록 기도할 수 있는 성숙된 신앙의 경지까지엔
아직 이르지 못하였기에 더욱 안된다고 하였다.
상담봉사를 지금까지 해 오면서 이론과 실제의 괴리현상, 이해와 인내의 결여,
해결사적 사고방식에 묶였던 부끄러운 기억들이 수없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보다 더 강한 주관적인 사고 방식의 틀 속에
집어 넣으려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아들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런 순간,
섬광처럼 스치는 상념들,
신앙의 차원에서 이해와 사랑으로 수용하여 아들을 한 인격체로 인정하고,
고뇌하는 아들의 음성을 가슴으로 들어 주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의탁하고 기도하면서
그 분 뜻을 따르자는 생각이 폭발 직전의 분노에서 이성을 찾게 했다.
휘몰아치던 가슴의 소용돌이 속에서 긴 한숨을 몰아 쉬고 말했다.
"나는 반대한다. 그러나 사제 성소가 어느 누구의 의지대로 되고 안 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내가 반대한다고 네게 있는 사제성소가 어떻게 변화될 수는 없는 거다. 그 분의 뜻이라면.
그러니 우리의 서로 다른 의견과 감정을 누그러 뜨리고 겸손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자.
어떤 결과가 주어지던 그 또한 섭리가 아니겠니?"
나는 천상의 일보다 밀려드는 생존경쟁의 벌판에서 자존의 터전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오늘의 나와 가족의 안일만을 위해 살아 온 듯 하였다.
내가 지고 있는 멍에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걸까.
초라한 내가 얼마나 더 무너지고 부서져야 하는 걸까.
심한 갈등과 번뇌는 삶의 의욕을 상실케도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어떤 경우라도 나와 함께 하신다고 신앙한다.
"네, 어머니,"
아들의 짧고 단호한 음성은 나를 상념의 세계에서 깨어 나게 했다.
고뇌하는 아들의 두 눈을 들여다 보니 한치의 양보없이 나의 이해만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그때에 나는,
아브라함의 높은 신앙과 같은 모습을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그리고
그의 부모님들에게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음이다.
큰 아들 진호는 지금 그때 원하던 사제 성소직과 다른 한의학도의 길을 걷고 있다.
영원을 향한 수도자적인 삶의 길은 아니지만
큰 아들 베드로도 그리스도께서 몸소 실천하신 사랑과 섬김을 배우고 닮아,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에게 인술의 사도가 되어지길 바라고 있다.
어느날 가장 어렵고 힘들어 잊혀지지 않는 눈 빛으로
또 하나의 다른 음성으로 내 가슴에 각인된 그때의 기억들을 생각하여 보았다.
우리네의 삶이
고통이더라도 상처 입고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과 이해의 여백을
보여 줄 수 있는 풍요의 삶을 살고 싶어짐을.
1993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