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된 아버지 어머니
사랑은 말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말이 없어도 사랑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께서 대학 교수인 외당숙에게 나를 소개하실 때, 당신의 가슴에 끌어안으며 “홀로 사는 내 큰 딸”이라면서 울먹이며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사랑은 말만이 사랑이 아닙니다, 말이 없어도 사랑입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자기자식 자랑하는 친지들 앞에서, 살그머니 내 귀에 대고 “나는 그래도 우리 큰 딸이 제일 좋다.” 처음 들어 본 어머니의 사랑표현이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사랑한다는 최상의 표현을 그 말씀으로 대신했습니다.
일생동안에….
백수를 누리실 것으로 믿었던 저희 아버지께서 2013년 06월 14일 20시 23분 91세를 일기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를 자랑으로 생각하신 우리 아버지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집에 계시지 아니하시니 가슴 휭 하여 손에 쥐었던 귀한 보석이 날아 간 듯합니다. 찾아 가기만 하면 항상 계실 곳에 계신 것으로 생각했던 아버지가 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안에 있어야 할 보배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 부르면, 만면에 웃음 가득하여 “왔니? 아이들도 잘 있지?” 그 말씀으로 인사를 받으셨습니다.
산을 사랑하시고 푸른 소나무를 좋아하셨습니다. 산을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오르내리었습니다. 매일 만 보를 걷기 때문에 “나는 건강한데, 너희 어머니 건강이 걱정이다" 하셨던 아버지께서 병원퇴원 하루를 앞두고 갑자기 먼저 가셨습니다. 아버지! 홀로 남으신 어머니 걱정은 잊으세요. 아버지 평상시 말씀대로 먼저 가시길 원하셨잖아요. 자식들이 어머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릴 겁니다.
마지막 아버지의 차디찬 이마에 입술을 맞추며,
"사랑해요. 아버지!"
아버지가 계심은 제 의지고 위로가 되었는데, 아버지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생전에 사랑이라는 표현은 아버지도 하지 못하신 것처럼 왠지 쑥스러워서 이 딸도 한 말씀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맏딸인 네게는 늘 미안하다"는 말씀을 자주하셨습니다. 공부가 하고 싶어 하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렵게 된 상황이어서 내가 동생들에게 양보를 하였던 것인데, 아버지는 나에게 늘 미안해 하셨습니다. “아버지 미안해하지 마세요. 늦었지만 제 스스로 대학원까지 원하던 공부를 하였잖아요.”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평화를 추구하시는 우리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 이듬해 어머니께서도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1947년 8월 부터 우리 가족을 위하여 평생을 포목장사를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노력으로 우리 가정이 밥이라도 제대로 먹고 교육이라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임종 하루 전에 병실에 들어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없는 어머니에게 “어머니 사랑해요. 고생 많으셨어요.” 라고 귀에 대고 말씀을 드렸더니 눈을 번쩍 뜨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최상의 선물로 받으셨을 것입니다. ‘얘가 웬일인가,’ 하시면서 눈을 번쩍 뜨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표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말로만 사랑이라는 낯간지러운 말은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말보다는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이 조금은 지나친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해 봅니다.
지금이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사랑이지 않는가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부모님에게는 그런 표현이 낯간지러워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말 하지 않는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사랑의 마음이 그득합니다. 서로가 침묵에 담긴 사랑을 느낌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서도 자식사랑표현을 못하신 것처럼.
지금이라도 말로 표현할 상대가 있으면 ‘사랑합니다.’라고 표현을 해 보심을 권장합니다. 이제는 부모 되실 연세의 가족이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80이 코앞에 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나이 먹고 갈 날이 가까워지니 이런 저런 생각으로 부모님을 그려 보았습니다.
하느님! 저희 아버지‧어머니, 세상에서의 온갖 수고를 용서로 받아주소서!
2014. 6. 20쓰고, 정리 2023.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