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잘 살고 있나요?
나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졸업논문을 준비한다고 국회도서관에서 사회복지 자료를 복사하고 있었다. 손이 바쁘게 움직이는 데, 복지관 관장에게 전화가 왔다. 노숙인 일을 맡아달라고 했다. 노숙인?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두 번째 전화가 왔을 때도 같은 대답이었다. 세 번째 전화를 받고는 '왜 하필 나야!' 하는 순간, 베드로 사도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을 때, 새벽닭이 울었다는 말씀이 머리를 스쳤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께서 한국에 오셨을 때였다. 서강대학교에서 기자들 인터뷰가 있다고 하여 그 현장에 갔다. '수녀님이 하시는 봉사를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직접 듣고 싶었다. 그러나 막연한 생각이었다. 생명의 전화에서 30년 상담봉사한 것 외엔 그때는 자격이나 전문지식도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잊어버렸다. 수녀님은 몇 년 후에 돌아가셨다. 수녀님이 관여한 사랑의 선교회로 친구와 조문을 갔다. 우스운 얘기지만 부의금을 영정 앞에 놓고, 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저도 당신께서 하셨던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랑의 봉사를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정작 그런 일을 맡아 달라는 요청이 왔는데, 못 한다고 거절을 한 것이다. 그러나 결국 심사를 거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노숙인 재활쉼터, '아가페의 집'을 서울시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게 되었다.
벼랑 끝에서 갈 곳을 잃고 거리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다. 알코올 중독과 조현병으로 가족에게도, 사회로부터도 외면당하여 열악한 상황에 처한 여성들을 재활을 통하여 사회복귀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기관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우선은 그들의 신분을 회복시키고, 증상을 완화시켜, 사회의 일원으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치료를 받게 하고, 빚이 있는 대상자는 파산신청을 하여 탕감을 받아야 했다. 인문학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워 주는데 정성을 다하였다. 병원에서 받은 처방약은 간호사가 일일이 복용하도록 도와주고 확인을 하여야 했다. 노숙인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였으니,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8개월 동안은 그들과 함께 생활을 했다. 처음 아가페의 집에 들어오면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혔다. 거리생활이라는 것이 얼마나 열악한지 모른다. 입혀줄 옷이 없어서 교회와 봉사기관 단체 등을 돌아다니면서 옷을 구해왔다.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서울역, 영등포역, 을지로 입구 등 어디든지 가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야간상담도 하였다. 그리고 사람이 사는 것처럼 살아보자고 설득을 하였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자유롭고, 공동생활은 수칙이 있어 가기 싫다고 거부도 했다. 인내가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남자 노숙인으로부터 성폭력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눈내리는 겨울밤이다. 서울역사에서 콧물을 질질 흘리는 남자의 손에 잡혀서 두려움의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는 여인을 만났다. "이분이 누구세요?" "내 마누라요"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을 한다. "남편이세요?" "아~닌~데요" 두려워 말도 제대로 못 한다. "그러면 잡힌 손을 떼어 내세요!" 여인이 손을 뿌리치는 순간 남자의 눈에서 광기가 번쩍 솟았다. 놓친 손목을 잡으려고 억센 손이 달려들었다. "도와줄 테니 내 손을 잡으세요!" 손을 잡으며 "뛰세요!" 그럴 때는 뛰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손을 꼭 잡고 '헉! 헉!' 숨이 막히도록 뛰었다. 그 현상은 마치 이리가 먹잇감을 향해 돌진해 오는 모습이었다.
대체로 아가페의집에 들어와 생활을 하면서는 거리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그리고 증상이 호전되면 일자리를 갖게 되고, 작은 돈이지만 저축도 하여 임대주택을 받아서 자립을 하게 되기도 한다.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로 살아가야 할 힘을 스스로 키워야 한다. 초기상담에서 그의 욕구와 강점을 찾는 일은 중요하다. 교육을 받고자 하는 대상자도 있었다. 그럴 경우 후원으로 중고등학교, 대학까지도 최소한의 경비를 지원하고, 기술자격을 받게도 협조하였다. 교육을 통해서 생각이 바뀌게 되고 인격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일상생활로 돌아갔을 때는 사회복지사로서의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황무지였던 여성 노숙인 재활쉼터를 초창기부터 함께한 직원들, 사랑의 노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애가 있다고 외면을 당하거나 재활의 길이 닫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하늘도 외면하지 않는다, 는 진리의 말씀이다.
손을 붙잡고 숨을 헐떡이며 함께 뛰었던 그녀도, 지금은 잘 살고 있겠지요!
2020.07.20 월간 수필문학 8월호 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