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삶의 들녘

아우를 2018. 10. 25. 20:51


                          삶의 들녘에서

                                                           

 

꼬불꼬불 높낮이가 심한 돌산 길을 따라 산정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푸르게 잘 자란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지만, 움푹 패 인 땅 바윗돌사이에서 앙상하게 뿌리를 드러내고 서 있는 소나무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갖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살겠다는 의지로 버텨 온 허리 휜 모습이 애처롭다. 마치 내가 살아 온 삶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엊그제인 듯하였으나, 보낸 세월이 불현 듯 멀게만 느껴져 뒤돌아보게 하였다. 언제 어떻게 지나갔는지. 그 때 그 자리를 떠나 쉬지 않고  달려왔다.

 

휴일이면 강가에서 붕어를 낚기도 하고 등산을 하며 체력을 단련시키면서 건강유지를 잘 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강은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리움만 가득 쌓이게 하였다.

젊은 나이에 갈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영혼도 지금도 내 가슴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묵은 삭정이 부러지듯 허망하게 무너진 남편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는 평생 가시지 않을 슬픔이 유산으로 남았다.

남겨진 어린 세 자녀들에게 뿌리를 묻고 살면서도 지쳐서 쓸어질듯 하여 어디 정붙여 살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히 웃는 남편의 모습이 엊그제처럼 생생한 모습으로 다가와 어디 간들 정붙여 살 마땅한 구석이라도 찾겠는가, 하여 엉거주춤 제자리로 돌아와 용기 백백  잘 살아가겠노라며 힘찬 다짐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남대문 시장에 물건을 사러 가는 중 길 가에 걸려있는 거울에, 초췌하게 변해버린 낯선 모습이 내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어디서 본 듯하여 뒤돌아 가 다시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타인처럼 보였던 낯선 여자의 얼굴이 나도 몰라보게 변한 내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고향의 시냇가에서 어린 시절 미역 감던 물도 흐름 따라 세월 저 편을 지나와 옛 물이 아닌 말라 버린 도랑물로 변하였는데 낸들 정지된 옛 모습대로 있겠는가.

나는 살아오면서 남편 없는 슬픈 가슴을  스스로 달래고 어루만져 가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기억 저 멀리의 아빠를 그리는 어린 자녀들의 눈물겨운 그리움의 모습은 내게는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커다란 고통으로 남아, 남편의 고뇌 진 모습으로 다가와 더한 상처를 입혀 주기도 한다.

 

남남이 만나 맺은 부부란 무엇인가. 피 한 방울 섞이지도 않았는데, 사랑이 무엇이기에 잊지도 떼어내지도 못하고 있는가. 온갖 무거운 짐을 지고 벗고 내리는 힘겨운 삶을 살면서도  남편에게는 마음 흘김 한 번 하지도 못했다.

어느 해 오후였다. 팔당의 물줄기를 따라 걸어가면서 댐 지하에는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통유리를 통하여 볼 수 있는데 마치 꿈길을 걷는 것 같다고 했다. 어려서는 집채만 한 고래를 보았다며 손을 크게 벌려 고래의 크기를 그려 보이는 등 흥미를 돋우며 재미있게 얘기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낙비가 지척을 분간 못하게 쏟아지는 게 아닌가. 비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마침 길가에 잎이 넓은 떡갈나무가 있어 그 밑으로 들어가 소낙비를 피해 서 있었다. 앞으로 들이치는 소낙비를 덜 맞게 해 주겠다며 남편은 내 앞에 서서 비 막이가 되어 주었다. 그가 맞은 비만큼 나도 별반 다르지 않게 비에 젖어 차려 입고 나온 옷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봄 날씨에 비를 맞아 추워서 덜덜 떨고 서있던 남편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첫돌이 갓 지난 막내딸까지 아이들 셋을 어머님께 맡기고 모임이 있다고 거짓 말씀을 드리고 나왔으니 벌 받은 거라며 마주보면서 웃었다. 비 맞아 생쥐 꼴을 하고 소낙비 그친 뒤의 햇살을 받으며 손잡고 뛰었던 추억을 되살리니 웃음이 절로 난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간 것은 육신뿐이다. 그의 영혼과 우리의 사랑은 지금도 가슴속에 머물러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그리움으로 가슴앓이를 겪게 하기도 한다. 그래도 자식들을 통하여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큰 위로가 된다.

남편이 가꾸다 두고 간 삶의 들녘에서, 괭이 들고 호미도 쥐고 사랑과 기쁨, 슬픔과 고통까지도 한데 어우러지도록 일구어 내면서 가슴에는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 거기서 인생의 소중함과 과욕 부리지 않는 순리의 삶도 배웠다.

가난을 벗어나는 일은 농촌에서 밭을 가꾸는 농부의 땀 흘리는 모습만큼이나 어렵고 힘이 드는 낯선 작업이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고통보다는, 내가 겪고 있는 이 고생이 더 낫다고 생각하며 그가 놓고 간 삶에 그리움을 담아 사랑으로  지켜왔다.     

기실, 지게 품을 팔아서라도 돈 벌어다 주는 찌그러진 남편이라도 있는 여자는 행복한 것을 ……

내가 밟고 지나 온 그리움 뿌려진 굽이굽이 길 사이에서 재잘되던 세 아이들도 아빠 잃은 상처로 가슴앓이를 하면서도 다행히 건강하게 잘 자라 이제는 어미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

허리 휘어진 소나무를 만나 갖가지 상념에 잠겼던 마음을 추스르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맑은 하늘에 구름이 만들어 놓은 여러 형상들을 바라보며 고뇌 찬 남편의 모습도, 회심[心}의 미소 짓는 나의 모습도 그곳 한 쪽에 그려 넣어 본다.  

                                                                       

                                                                                                                     19961020일                        

                                                                                                                                            산정호수를 다녀와서

                                                         

                                                                                 와디럼 사막